천년의 쉼터 마음의 고향 강릉 보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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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원대사와 지장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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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원대사

    낭원대사朗圓大師 834~930

낭원대사(朗圓大師)(834~930) 개청(開淸)은 범일국사의 제자로 사굴산문의 제2대 종주(宗主)이다.


개청은 굴산사에 머물러 있었는데 889년 범일국사가 입적하자 알찬(閼粲), 민규(閔規)의 청함을 받아 보현사로 와서 주지가 되었다. 이때부터 보현사는 사굴산문의 대표적인 선종 사찰이 되었다.
보현사(普賢寺)는 940년(고려 태조 23)에 세운"낭원대사 오진탑비"로 보아 이때의 사찰명은 보현산 지장선원으로 되어 있다.
후대의 기록인 『범우고(梵宇攷)』에는 보현산 지장사(地藏寺)로 나오고, 지금 폐지되었으며, 보현사가 뒤를 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밖에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동국여지지(東國輿址誌)』에 지장사(地藏寺) 또는 지장암(地藏庵)으로 표기되어 있다.
낭원대사 개청의 속성은 김씨로 경주츨신이다.
그의 선조는 신라의 왕족으로 할아버지 김수정은 상서성 및 어사대의 관리를 역임하였으며, 아버지 김유거는 지방관을 지냈다.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꿈을 꾸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신승(神僧)이 뜰 아래로 내려와 품안에서 금과 나무로 만든 도장 두 개를 꺼내 보이면서 ‘둘 중에 어느 것이 필요한가?’하고 하였다.

어머니는 말없이 바라보고 있으니 스님이 곧 금으로 만든 도장만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이후 임신하여 고기와 자극적인 음식을 멀리하고, 절을 만들어 정성으로 불공을 드렸다. 마침내 854년(문성왕16) 4월 15일에 대사가 탄생하였다. 얼굴이 마치 보름달과 같이 단정하고 입술이 연꽃처럼 붉었다.
25세에 출가하여 지리산 화엄사의 정행(正行)스님에게서 개청(開淸)이라는 법명을 받고, 진주의 엄천사(嚴川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남해 금산에서 참선 수도하면서 대장경을 읽다가 옥축일음(玉軸一音)이 들려 금강삼매(金剛三昧)의 진리를 얻었다. 이때부터 3년 동안 혼자서 참선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노인이 나타나 굴산사로 범일국사를 찾아갈 것을 일러 주었다. 낭원대사는 그 길로 강릉 굴산사로 가서 범일국사를 친견하게 되었다. 범일은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이 “왜 이리 늦게 왔느냐? 너를 기다린 지 오래다.” 라고 입실을 허락하고 심인(心印)을 전하였다. 범일국사의 나이가 90세가 되자 스승 범일국사를 대신하여 선(禪)을 가르쳤다. 889년 범일국사가 입적하자 정성을 다하여 보탑(寶塔)을 수축하고 굴산사를 유지 발전시켰다.
보현사 부도탑

명주에 살고 있던 알찬 민규라는 사람이 일찍부터 사찰을 지원하면서 개청을 찾아와 법문을 들었는데,

마침내 개청에게 보현사를 희사하며 주지가 되어 줄 것을 청하였다.
보현사가 선객들이 살기 적합하다고 판단한 개청은 초목을 베어냐고 둔덕을 깎아 평지를 깎고, 도로를 개통하고 법당과 탑을 새로 세웠다. 이후 전국의 승려들이 선을 지도받고자 사방에서 모여들었고, 경애왕도 사신을 보내어 국사(國師)의 예를 표하였다. 그러나 낭원대사는 세간의 명성에는 관심을 두지 안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깊은 산중 사찰인 보현사에서 후학지도에 몰두하다가 930년에 보현사 법당에서 앉은 채 입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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