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쉼터 마음의 고향 강릉 보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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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사미타계

천년의 쉼터 마음의 고향 강릉 보현사

미타계

보현사 신도회의 향도조직이다.


미타계는 미타존불도라고도 한다.


미타존불도는 나말여초에 강릉지역의 선종불교의 신도회로서 결정되었던 것으로 파악되며, 1681년(숙종7)을 전후한 시기에 보현사의 신도회로 중수되면서 미타계로 불렸다.


숙종 당시에 미타계 중수를 주도한 사람은 전순장 최동린, 안일호장 최익동, 공사원 홍춘관, 장무 김덕주, 공사원 최륜 등으로 파악된다. 이들이 가졌던 안일호장 전순장, 공사원 등의 직임으로 보아 향리세력의 상층부를 구성하였던 호장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릉지역의 미타계는 미타존불도를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먼저 미타존불도가 창계된 시기가 나말여초이고, 이 시기 강릉지역의 선종불교는 굴산사의 선승 범일이 조사였다. 그리고 선승 범일은 강릉단오제의 주신으로 신격화되어 있다. 그러나 강릉단오제의 중심에 놓인 국사성황제는 조선 초기 국가의 이념정책으로 관주도화 내지 획일화되면서 주신의 신체가 동요되고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숙종 때를 전후한 시기에 미타계가 중수되고 있음은 곧 강릉단오제의 중심에 놓인 국사성황제가 재연되는 사회적 배경으로 주목된다. 즉 조선 후기에 이르러 강릉단오제에서 국사성황제가 다시 재연되었으며, 아울러 이 시기에 강릉 여성황제를 비롯해 관노가면희와 같은 유희가 연행되었던 것도 미타계의 결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타계첩

미타계첩 彌陀契帖


보현사의 신도회 계첩이다.

1681년(숙종 7)에 작성된 서문이 확인되며, 그 이후 작성된 좌목과 서문이 이어진다.
1719년(숙종 45)에 편찬된 『미타계좌목』과 1908년(순종 2)에 편찬된 『미타계원사조열록』과 『미타계천안』이 전해진다. 미타계를 중수하면서 작성되었다.
미타계는 아미타불을 신봉하여 청정불국토 극락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강릉 보현사 불자들이 조직한 계 모임이며, 내용은 미타계원의 명단과 계원으로서 사망한 자들의 명단, 계원의 4조를 기록하고 계원들이 준수해야 할 규칙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미타계의 연원과 그 전통성을 밝히고 아울러 계원들의 결속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작성된 서문이 시기별로 첨부되어 있다.
보현사 창건 때 조직되어 오늘날까지 계승되어오고 있다고 전해온다.
본 계첩은 1779년 개장한 것으로, 계첩에는 1681년 미타계의 내력을 소개한 서문과 그 동안 참여했던 740여 명의 계원 명부가 계헌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미타계는 오늘날의 계 형태를 갖춘 모임으로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미타계첩은 조선시대 신도회의 면모를 살필 수 있으며, 특히 지방관아의 향리세력의 동향과 읍치의 제의를 연관하여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파되어 공인된(527년) 이래 급속히 생활 속에 자리잡아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깊은 산중 사찰인 보현사에서 후학지도에 몰두하다가 930년에 보현사 법당에서 앉은 채 입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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