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결정제도 도입 1년 맞아 본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사진설명 :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 1년 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등록한 사람이 11만5000여 명에 달한다. 사진=보건복지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영상 캡처

사찰에서 49재가 있을 때마다 찬불가로 음성공양을 해온 실상화(65)보살은 얼마 전 재(齋)봉사를 같이 해 온 도반으로부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몇몇은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 것과 달리 실상화 보살은 도반 4~5명과 함께 그 자리에서 작성했다. 의료기관에 제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으로부터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등록돼 조회할 수 있다는 문자를 한통 받았다. 연명치료라는 말이 갖는 무게감에 비해 절차는 비교적 간단했다. 실상화 보살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이유는 명확했다. 임종을 앞두고 고통스런 상황에서 의미도 없는 치료를 계속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49재 때마다 유족들을 만나 임종자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 오랜 투병생활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자식들에 부담주기 싫은 마음도 컸다. 낫는단 희망도 없는데 병간호하랴 병원비 내랴 이중고를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족들이 알면 반대하거나 부담스러울 거란 생각에 상의도 안 했다고 한다. 스스로 결정할 일이고, 때가 되면 알려주려고 했다고 담담히 말했다.

우리나라에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1년, 죽음에 대한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치료효과도 없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항암제 투여 등 의학적 시술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연명의료결정제도 도입 1년 만에 11만5000여 명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여성이 7만7974명으로 67.7%에 달하며, 연령별로는 60대 이상이 84.6%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사회적 흐름으로 보자면, 근간에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웰빙’ 열풍이 불기 시작해 ‘웰다잉’으로까지 이어졌다. 생사(生死)가 둘이 아닌데, 사람들은 사는 걱정만 하고 죽음에 대해선 잘 생각하지 않는다는 반성 속에서 시작된 움직임이다. 존엄한 죽음에 대한 관심은 그러나 노년층에 집중돼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5일 발표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현황 통계를 보면, 전체 11만5000여 명 중 40대 미만이 1.2%에 불과했다. 나이가 적을수록 연명의료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존엄한 죽음’ 인식 높아져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

11만 명, 3만6000명 이행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젊다고 죽음에 한해 예외인 것처럼 행동할 게 아니라, 미리미리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죽음을 얘기하는 것 자체를 터부시 하는 문화 탓인지 우리나라에서는 공교육 커리큘럼 안에 죽음에 대한 교육이 전무하다. 반면 독일에서는 이미 30년 이상 중고등학생들에게 죽음준비교육을 해왔다. 국공립학교에서 종교시간을 활용해 <죽음의 과정과 죽음> 등 교과서를 통해 진행된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십대 청소년 자살과 범죄 증가로 2000년대 들어 죽음 교육을 시행한다. 미국은 1960년대부터 죽음준비교육을 했다고 한다. 중고등학교는 물론 일부 종합대학에서도 ‘죽음학’ 강의를 개설하고 있다.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운영하는 경제연구기관 EIU가 2015년 발표한 죽음의 질 지수(Quality of death index)에서 1위를 차지한 영국은 어떨까. 우리나라보다 죽음의 질이 앞서는 이유는 의료보험이나 호스피스 시스템이나 의료진 여건이 뛰어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죽음을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문화 때문이다. 영국의 죽음문제연합(Dying Matters Coalition)은 사람들이 공공연히 죽음과 가족의 사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었다. 또 죽음카페(Death cafe)를 만들어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공유하는 자리를 제공했다. 남녀노소를 떠나 자신의 죽음을 고민하고 준비하게 되면서 죽음의 질을 높이게 된 것이다.

죽음의질 18위를 기록한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자. 지난 1년 3만6000여 명이 연명의료 중단을 이행했다. 유감스럽게도 이 중 67.7%는 가족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가족 전원합의로 연명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지한 경우다. 본인 의사를 확인한 경우는 32.3%에 불과했다. 자기결정보다는 가족에 의한 결정비율이 월등히 높음을 보여준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주체가 돼 삶을 정리하지 않는다면, 가족에 의해 죽음을 맞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임종과정의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 연명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려면 가족 전원이 합의해야 한다.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가족에게 심리적 사회적으로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질병을 파악하고, 어떻게 마무리할지 결정을 한다면, 본인과 가족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

암 투병 중에도 죽음학을 강의하는 정현채 전 서울대 교수는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에서 이렇게 권한다. “품위 있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을 준비해나가길….”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하려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자신이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해 연명의료 및 호스피스에 관한 의향을 담은 문서다. 19세 이상의 사람은 누구나 작성할 수 있다. 절차는 간단하다. 우선 신분증을 지참하고 보건복지부 지정을 받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을 방문해 관련 설명을 듣고 작성, 제출하면 된다.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에 보관돼야 법적으로 유효하며, 홈페이지(www.lst.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투여 등 4가지 연명치료를 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작성자는 본인 의사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오는 3월28일부터는 4가지 치료 외에도 효과 없이 임종과정만 연장하는 시술도 포함된다. 체외생명유지술, 수혈, 승압제 투여 등이 추가될 전망이다. 연명의료중단등결정에 대한 작성자의 뜻은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된다.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의 전문의 1인이 동일하게 작성자를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라고 판단할 때 이행된다. 번복할 수도 있다. 의사에 따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내용이 변경되며, 철회하면 등록이 말소된다.

불교계에서는 동국대 일산병원과 불교여성개발원,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를 통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할 수 있다.

[불교신문 3466호/2019년2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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