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57년차 불자 코미디언 남보원 씨

재치있는 입담과 성대모사 등
‘원맨쇼’ 통해 국민 울고 웃겨

도문스님 통해 우울증 치료 후
대성사서 기도하며 신심증장

근현대 100년사 담은 다큐로
민족 기쁨 슬픔 담아내고파

 

지난 11일 만난 불자 코미디언 남보원 씨는 여전히 전성기 못지않은 화려한 입담을 선보였다. 신재호 기자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1951년 미국 의회에서 전역 고별 연설에 나선 맥아더 장군이 남긴 명언이다. 하지만 이 명언이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진 않는다. 인생 100세 시대를 맞아 화려했던 지난 시간을 훈장삼아 과거에 안주하는 게 아니라 현역 못지않게 활발하게 현장을 누비는 이들 또한 적지 않다.

올해 84세인 원로 코미디언 남보원 씨도 그 가운데 한명이다. 고(故) 백남봉 씨와 함께 ‘원맨쇼’라는 독창적인 코미디 장르를 개척한 남 씨는 데뷔한지 57년차를 맞았다. 본명은 김덕용으로, ‘남쪽 보물의 으뜸’이라는 뜻의 남보원(南寶元)이라는 예명을 50년 넘게 사용하고 있다.

지난 11일 서울 방배동 자택 인근 커피숍에서 만난 남 씨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재치있고 유머있는 입담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특히 뱃고동과 전투기 이륙 등 사물 소리는 물론 박정희 전 대통령 앞에서 성대모사해 ‘나랑 비슷하구만’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일화까지 다양한 레퍼토리의 성대모사는 대중을 박장대소 시켰던 현역 시절 그 모습 그대로였다.

“포털사이트에 남보원을 검색하면 남보원 사망이 관련 검색어로 뜨는 데 저 아직 죽지 않았어요. 여전히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원맨쇼 하는 NO.1 코미디언 남보원입니다. 무대에 올라가면 1시간 넘게 재미있는 이야기와 성대모사에다가 노래를 섞어서 원맨쇼를 할 수 있죠. 게스트가 1, 2명 있다면 2시간 넘게도 거뜬히 할 수 있어요.”

화려한 입담으로 좌중을 사로잡는 남 씨의 재능은 어릴적부터 발휘됐다. 집에 있던 축음기를 들으며 노래를 익힌 남 씨는 5세 때부터 노래를 부르며 온 동네를 누비자 동네 어르신들은 ‘너는 그거나 해서 먹고 살아라’ ‘풍각쟁이나 해라’ 등의 말로 남 씨를 응원했다. 훈련병 시절 장기자랑을 하던 남 씨를 본 논산 육군훈련소장도 ‘넌 제대하면 딴따라나 해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법관이나 정치인을 꿈꾸며 1957년 불교종립학교인 동국대 법정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했지만 등록금으로 무대의상을 구입하는 바람에 결국 1년 뒤 중퇴할 수밖에 없었다. 1998년 동국대 국제정보대학원 고위정책과정을 수료한 남 씨는 1년 뒤 1999년 2월 42년만에 명예 학사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정치 입문을 제안 받기도 했어요. 하지만 난 무대 위에 올라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이 길이 좋아요. 고맙게도 모교에서 명예 졸업장을 주셔서 정말 고마웠죠.”

남 씨는 1963년 영화인협회 주최 ‘스타탄생’ 코미디부문에서 팔도사투리로 우승하며 데뷔했다. 통행금지가 있던 무명 시절에는 ‘밤새 다방을 지켜주겠다’며 다방에서 홀로 노래 연습하고 성대모사를 단련하며 원맨쇼 실력을 키워나갔다. 이같은 숨은 노력 덕분에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 코미디계의 대표 주자로서 맹활약할 수 있었다.

불심 깊은 어머니가 절에서 지극정성으로 기도해 태어난 남 씨는 자연스레 불자의 길을 걷게 됐다. 결국엔 오진으로 밝혀졌지만 40대 초반에 5년밖에 못산다는 진단을 받고는 우울증에 자살 충동까지 느꼈다고 한다. 병원 진료 후 귀가하다 우연히 작게 세워진 우면산 대성사 입간판을 보고는 곧바로 유턴해 대성사를 찾았다.

현 조계종 원로의원 도문스님이 남 씨를 반갑게 맞아줬고 대화를 많이 하라는 취지로 ‘거사님은 말씀을 많이 하셔야 한다’는 처방도 내려줬다. 그날 이후 한동안 매일 아침마다 대성사를 찾았다. 스님들도 남 씨에게 단전호흡을 지도하고 차담과 발우공양 등을 통해 지친 심신의 안정을 되찾아줬다. 도문스님도 신도들과 함께 남 씨 집을 직접 방문해 기도해 주기도 했다.

남 씨는 지금도 틈나는 대로 대성사를 찾아 기도하고 있으며 지방 공연을 가서라도 인근 사찰에 들러 합장인사라도 드리고 오는 등 불심을 증장하고 있다. 특히 남 씨가 1985년 평양 공연을 앞두고 불안해 하자 도문스님은 “호신진언(護身眞言) ‘옴 치림’을 7번 외면 무사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남 씨는 지금도 마음이 불안해질 때마다 ‘옴마니반메훔’을 왼다.

피리 성대모사를 하는 모습.

반세기 넘게 국내외 무대를 누비며 지난 2006년 연예인으로서는 최고 훈장인 ‘은관문화훈장’도 수상했다. 후배 연예인들과 함께 10여 년 전부터 ‘남보원축구단’도 단장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원맨쇼를 제대로 하는 후계자가 없는 게 한(恨)이 된다고 털어놨다. 또한 원맨쇼로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한국전쟁, 민주화운동 등 우리 민족의 지난 100년의 역사를 꿰뚫어 보는 다큐멘터리를 생전에 제작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제가 10살 때 해방이 됐는데 개천에서 놀다가 일왕의 항복 선언을 들었어요. 평안남도 순천 출신으로 1·4후퇴 때 남한으로 내려온 이산가족이기도 해요. 지난 100년 동안의 우리 민족의 아프고 기뻤던 역사를 꿰뚫어 보는 대서사시 같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보고 싶은 게 제 마지막 화두입니다. 너무 오버하지 않고 송해 선배처럼만 하면 잘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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